아르메니아군 병사들이 카라바흐 지역의 전선에서 아제르바이잔군을 향해 야포를 쏘고 있다. 아르메니아 국방부가 10월4일(현지시간)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배포한 사진 ⓒAP연합

cr. https://news.v.daum.net/v/20201010100202093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에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분쟁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간자에까지 폭격이 이뤄졌고, 사태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유럽안보협력기구 내 민스크그룹 의장국인 러시아·프랑스·미국이 중재를 시도했으나 양측 모두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우리 땅”이라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아 협상이 결렬되고 말았다. 카라바흐가 아르메니아인에게 그토록 중요한 민족적 성지라면, 어떤 이유로 지금 국제법상으로는 아제르바이잔 영토가 된 것일까? 그리고 국제법상 명백히 아제르바이잔 영토인 카라바흐에 현재 80% 이상이 아르메니아인들로 채워진 원인은 무엇일까? 카라바하는 25만~30만 년 전에 살았던 인류의 턱뼈가 발견됐을 정도로 인류 문명의 역사가 오랜 곳이다. 본격적으로 카라바흐에 아르메니아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부터다. 1805년 카라바흐 왕조의 통치권을 넘겨받은 러시아제국은 1813년 이란과 ‘귈리스탄 조약’을 체결해 현재의 아제르바이잔 영토를 넘겨받는다. 곧이어 1828년 강화조약 ‘투르크만차이 조약’을 체결한다. 러시아제국은 이 조약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이 이란에서 카라바흐를 포함한 오늘날의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이주할 수 있도록 법적·정치적 제도를 보장해 주었다. 이를 계기로 카라바흐에 아르메니아인의 본격적인 정착이 이뤄진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불행한 학살과 포그롬(러시아의 소수민족 박해)에 대한 러시아의 역사는 ‘아르메니아-타타르 전쟁’이라 불리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가시화된다. 이른바 아나톨리아에서 이주해 온 40만 아르메니아인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카라바흐에 거주하던 아제르바이잔인들을 집단학살한 사건이었다. 이처럼 피비린내 나는 비극적 역사를 뒤로하고 아제르바이잔은 1918년 민주공화국을 수립했고, 카라바흐는 여기에 귀속된다. 

1991년 결국 소련은 해체됐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모두 독립국이 됐다. 아제르바이잔은 곧바로 본국에 귀속됐던 카라바흐의 자치권을 폐지했다. 그러자 한 달 후 카라바흐는 국민투표를 통해 아제르바이잔에서의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유엔 회원국 그 어느 나라도 공식적으로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르메니아조차도 독립을 인정하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었다. 독립을 인정하는 순간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전쟁으로 대략 3만 명 정도의 사망자와 100만 명 정도의 실향민·난민이 발생했다. 1994년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 7월에도 국경 지역에서 충돌했고, 지금 카라바흐 지역에서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카라바흐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종교·민족·역사 전쟁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주변 강대국들의 이권과 패권싸움 또한 여기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기사를 읽다 보니 남아프리카에서 계속되는 전쟁들의 성향이 모두 비슷하다고 느꼈다. 6.25 전쟁이 생각나기도 했다. 국제사회가 하루라도 빨리 평화협정을 맺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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